영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사건 재판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인데요. 오늘은 행복의 나라 실화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 그가 생전에 부인과 자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와 유서를 가져와 봤습니다.
영화 행복의 나라 실화?
▶ 영화 행복의 나라 실화 모티브
영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발생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을 주도한 김재규 정보부장의 심복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을 통해 70~80년대 혼란의 현대사 이야기를 접했는데요. 이번에는 같은 시대 배경에 알려지지 않았던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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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대통령 암살 후 김재규는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장 전주환에 의해 체포되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 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해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당시 김재규의 수행비서관이었던 박흥주는 실제 그를 도운 인물로 경황 중 김재규의 암살 계획에 가담하게 되는 인물인데요. 김재규는 박흥주, 박선호 등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선처를 바랐으나 공범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박흥주는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박흥주는 40세의 나이에 총살형으로 집행되었는데요. 박흥주가 마지막으로 외친 한 마디는 '대한민국 만세! 대한육군 만세!'였다고 하네요. 신기한 건 M1 소총으로 흉부에 세 발을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박흥주에게 결국 입회한 상사가 머리에 권총을 쏴서 마무리했다고 전해집니다. 끝까지 안타까운 점은 박흥주는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로 처형을 당했기에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었다고 하네요. 이를 억울하게 여긴 부인 김묘춘 씨는 꾸준히 국가에 호소를 했으나 고 박흥주 대령은 그토록 묻히고 싶어 하던 국립묘지가 아닌 경기도 포천구 주내면에 있는 교회묘지에 쓸쓸히 잠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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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의 재판과정을 재현하여 그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의 이면을 재조명합니다.
박흥주 대령 누구?
▶ 박홍주 프로필
- 출생: 1939년 11월 15일
- 사망: 1980년 3월 6일 (향년 40세)
- 학력: 서울 고등학교
- 배우자: 김묘춘
- 자녀: 1남 2녀
- 임관: 육군사관학교(18기)
- 최종 계급: 대령(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 박홍주 생애
대한민국 전직 군인이자 육군 포병 대령으로서 1979년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으로 재직 중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에 박선호 등과 함께 연류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입니다.
평안남도 평원군 태생인 박흥주는 6.25 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당시 명문고였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원체 가난했던지라 등록금 걱정이 없던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는데요. 박흥주는 육사 18기로 졸업 후 1962년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우수한 성적 덕에 6사단에 배치되자마자 관측장교 보직을 건너뛰고 바로 전포대장에 보임되었습니다. 당시 6사단 사단장이 다름 아닌 김재규였는데요. 김재규는 박흥주를 알아보고 그의 심복으로 삼았고 1978년 4월 임관 16년 만에 박흥주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령에 진급, 곧이어 김재규의 부름을 받아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수행비서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박흥주는 청렴하고 겸손하기로 유명했다는데요. 덕분에 김재규를 비롯해 주변의 신망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교도소 벽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낙서를 남겼다고 전해지는데요. 김재규가 거사 계획을 말했을 때에도 부하들이 군말없이 모두 따른 것을 보면 김재규의 카리스마와 박흥주에 대한 부하들의 신망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대령의 사형이 집행되고 후일담에 따르면 그는 당시 아내와 국민학생이었던 두 딸, 8개월이었던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요. 아래 박흥주 부인 김묘춘씨와 그의 두 딸에게 쓴 유서 일부를 옮겨와 봤습니다. 박흥주 대령은 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버지로서도 훌륭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흥주 대령 부인 김묘춘씨
▶ 부인 김묘춘 씨에게 전한 유서 편지
부인에게,
"애들에겐 이 아빠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그때 조건도 그러했다는 점을 잘 이해시켜 열등감에 빠지지 않도록 긍지를 불어넣어 주시오. 앞으로 살아갈 식구를 위해 할 말은 못 하고 말았지만 세상이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 가정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게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의연하게 떳떳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겠소." (출처: 나무위키)
▶ 딸들에게 편지
두 딸에게,
"아빠가 없다고 절대로 기죽지 말고 전처럼 매사 떳떳하게 지내라.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자라나는 동안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의 지도를 받고 양육되겠지만 결국 너희 자신은 커서 독립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독립 정신을 굳게 가져야 한다. 조금 더 철이 들 무렵이나 어른이 된 후에도 공연히 마음이 약해지거나 기죽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헤쳐나가려는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겠느냐. 자기 판단에 의해 선택하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지게 되어 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출처: 나무위키)
▶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유언
"내 조국 대한민국은 희망 있는 국가요 또한 그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대업은 조국통일이며 조국통일에 목적이 있는 한 우리 국민은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족의 새로운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번 시련도 온 국민이 수천 년에 걸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처리해 온 위대한 민족혼을 발휘하여 서로 믿고 존중하며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단결하여 온 국민이 더욱 기쁜 마음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고락을 같이 하면서 이번 기회를 새로운 번영의 터전으로 삼아주길 빈다. 강한 성위요, 방패와 병기가 되신 주님께서 나를 키워주고 오늘 이 날 이때까지 품어준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그 강한 오른팔로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서 간성으로서의 소금의 직분을 다할 것을 믿습니다.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을 떳떳하게 잘 길러서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염려해 주시고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출처: 나무위키)
박흥주 부인과 자녀 근황에 대해서는 최근 알려진 내용이 없는데요. 이후 큰 딸 혜영이는 결혼하여 독일로 유학 가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둘째 딸 혜은이는 결혼하여 어머니 김묘춘 씨 댁에 들어와 함께 살게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인터뷰 당시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복무중이었는데요. 잘은 몰라도 아버지의 성품을 물려받았다면 모두 잘 자라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흥주 대령 가정에 오랫동안 평안이 깃들기를.
맺음말
이상 영화 행복의 나라 실화인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와, 그의 생애, 부인과 자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정리해 봤습니다. 영화 행복의 나라는 8월 14일 개봉하여 절찬리에 상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