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미있게/책수다 책소개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읽고

안녕하세요. 오늘은 책수다 책 소개 첫 글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읽었던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인데요. 책을 읽으며 필사하고 메모했던 제 글들을 함께 담았습니다. 

 

반응형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개요

▶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저자: 손열음
출판: 중앙북스/ 2015년 5월 28일
페이지수: 325/ 사이즈 150*215mm
교보문구 판매가: 13,500원 ebook 9,450원

제1장: 피아노와 음악
제2장: 늘 우리 곁의 클래식
제3장: 내 인생의 영감
제4장: 우리 시대의 음악
제5장: 손열음 그리고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리듬감의 비밀

" 내 리듬감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건 바로 이 점에서였다. 나는 분명 박자는 잘 맞추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을 움직이게 할 만한 리듬은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중략..... 첫 번째는 내가 덜 쪼개고, 덜 채운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는 얼핏 반대의 개념처럼 들리지만 상응하는 맥락이다.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여러 개의 작은 공을 속에 채워 넣어 만들어야 하는 아주 큰 비닐로 된 공이 있다. 이 공이 잘 굴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속에 들어갈 작은 공이 크기는 최대한 작고 수는 최대한 많아야 좋을 것이다. 이것들을 매우 촘촘히 채워 큰 공 속의 빈틈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매끄럽게 굴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 중략...... 테닛공으로 하나하나 채워 넣었다고 치자. 이 테니스공들은 하나하나 정확히 최대치로 부풀려져 완벽한 '구'를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찌그러져 있거나 설채워져 있다면 큰 비닐공의 형태 또한 일그러져, 굴러가다 말고 언젠가는 멈추지 않겠는가? 리듬이 바로 이와 같다! 최소단위를 쪼개어 가장 잘게 만든 다음, 최대치로 채워 긴장감의 연속성을 만들면 비로소 리듬이 흥을 띄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두 번째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나의 내성적 성향이었다. 엉뚱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건 리듬감과 가장 직결되는 문제였다. 쉽게 말하자면, 어디서든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어댈 수 있는 성격이 리듬감에 훨씬 더 유리한 거다. 그런데 이 성격이야말로 내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과도 같아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중략...... 이상적인 리듬감이 갖고 싶어 기울인 노력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자아를 찾아 나선 여행이 되었다. 음악이야말로 자아 여행의 보고인 것은 사실이니 결과적으론 나의 부족했던 리듬감이 거꾸로 내 음악의 영감이 되어준 셈이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中

 

매일 아침 나는 '그날의 음악'을 듣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1일 1 클래식 1 기쁨'이라는 책을 보며 그곳의 추천곡 위주로 듣곤 했는데. 어느 날 음악 app 이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하기 시작하더라. 그 음악들이 제법 제 구미에 맞아서 이제는 바로 play를 눌러 음악을 감상하곤 한다. 아침 음악으로 때론 잔잔하고 또 때론 활기찬 음악을 듣게 되는데 오늘 아침에는 문득 어깨춤이 추어지는 곡을 듣게 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들으며 오른쪽 왼쪽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나를 발견한 순간은 바로 손열음이 말하는 '리듬감'에 관한 구절을 읽을 때였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는 스스로를 의식하며 글을 읽어내려갔다. 

 

현재 중학생 딸 아이는 타악기 전공으로 예중에 다니고 있다. 사실 성격이 왈가닥에 가까웠던 녀석이었는데 어느덧 사춘기가 되면서 내성적인 면이 드러나는 중, 어쩌면 나는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성격의 이면에는 다른 반대 성향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성적 외향적이라는 말이 단지 흑백이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손열음은 내성적인 성향이 리듬감을 익히는 데 치명적인 약점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손열음의 내성적인 성향이 오히려 그녀의 리듬감의 비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온 신경이 내면을 향하여 부지런히 탐구하고 고뇌하기 때문에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더 깊고 견고한 것들을 얻어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쉽게말해 우리가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모든 순간은 어쩌면 우리가 내성적이 되는 타이밍이 아닐까 라는 생각, 그 밖에 외향적인 -사회적 자아로 살아가는-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하고 타인과 교류하며 데이터를 축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적당히 쌓일 때 즈음 아주 작은 신호나 계기로 인해서 어떤 경험이 우리에게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곤 하는데 그 순간이 바로 내면적, 내성적인 시간들이라는 생각이다.

 

한편 손열음이 말하는 리듬에 관하여, '최소단위를 쪼개어 가장 잘게 만든 다음, 최대치로 채워 긴장감의 연속성을 만들며 비로소 리듬이 흥을 띄는 것이다'라는 생각에는 정말 크게 공감하였는데 어쩌면 이러한 울림 역시 오로지 경험만이 허락하는 것이 아닐지 싶다. 다행히 나는 딸 아이의 리듬공부(타악기)를 곁에서 지켜보며 간접 경험을 한 것 만으로 이렇게 아주 조금이라도 얻어가는 것이지 않을까.

잘 된 연주란 무엇일까? 

잘 된 연주란 뭘까? 바르디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마법의 그 순간'을 만든 연주? 선생님은 관객이 집에 돌아가서까지 또렷이 기억해 모든 사람과 공감하고 싶은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단 한 번의 '매지컬 모먼트'가 있었다면 그 음악회는 성공한 거라 하신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가 완벽한 예다. 화려한 테크닉과 환상성 가득한 독창적 음악세계가 그의 장기인 것 같지만 역사적인 그의 모스크바 귀환 리사이틀을 보면 주 무기는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 1000여 명의 관객을 일제히 압도하는 피아니시모.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단 한 음. 탄성마저 허락되지 않는 그 순간. 그건 연주하는 우리도 분명 느낀다. 실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신앙적 체험'과도 같은 그 쾌감. 그런데, 지극히 관객의 반응에 좌우되는 이 순간이야말로 혹 순수한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中

 

살면서 때때로 그런 순간이 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아니 어쩌면 때때로가 아니겠다. 더 많은 인생의 순간들을 나는 경험한 적도 경험할 수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삶은 어떨까? 단지 취미로 음악을 즐겨 들으며 내가 받는 감동과 희열은 그들이 말하는 '신앙적 체험'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혹 마치 손톱 아래 박힌 가시가 누구에게든 아프고 성가신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동 역시 그 질량은 같으나 질감이 다른 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나는 아마도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겠다. 

잘 된 연주란 무엇일까. 아마 연주자마다 다른 대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침식사 시간에 딸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아이는 학생답게 '실수 없는 연주'가 가장 잘 된 연주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아마 기본에 충실한 것, 악보 그대로의 연주가 처음 음악을 공부하는 아이에게는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주자의 연주는 어떻게 다를까? 손열음의 지도교수였던 김대진 교수가 말했던 '계획대로 충실히 이행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역시 연주자의 기본 덕목일 뿐이지만 또한 가장 중요한 것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완벽한 연주를 떠올려보자. 연주가에게 있어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 청중과의 교감일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받은 뜨거운 갈채는 역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일지. 그렇기 때문에 손열음이 말한 것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짜릿한 순간'이 연주가들이 말하는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에 좌우되는 연주가의 운명은 또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결국 잘 된 연주란, 연주자가 끝내 풀 수 없는 딜레마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연주자가 아닌 일반 청중의 입장에서 보는 잘 된 연주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가 생각하는 잘 된 연주란 '연주자가 청중과의 교감을 의식하지 않고도 최대치의 공감을 불러오는 연주'이다. 사실 일반 청중이 연주자의 실수를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분명한 건 아름다운 한 곡이 연주되는 동안 설령 연주상의 실수가 있었다고 한 들 그 연주가 전해오는 매지컬 한 감동을 막을 수 있을까. 


오늘도 손열음의 좋은 글이 좋은 영감을 주었다. (지금 발견한 건데, 어제와 오늘의 내 블로그 문체가 다르다는 사실. 그럼 그냥 이대로 가는 걸로!) 

베토벤, 슬픔이라는 재료 

베토벤은 슬픔에 매우 인색한 사람이었다. 음울한 성향에 누구보다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지만 사실을 말할 것 같으면 그는 타고난 낙관주의자였다. 그의 음악에는 삶의 비극성과 관계없이 아니 오히려 현실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반대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피아노 소나타 7번 D장조 Op. 10-3> 중 2악장은 그런 긍정성을 싹 뺀 매우 드문 베토벤의 작품 중 하나다. 'mesto', 슬프다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를 곡 첫머리에 적어 넣은 이 악장은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마치 앞으로 자신의 삶에 드리워질 모든 고독을 예감한 것 같은, 그야말로 깊은 슬픔이 가득한 악장이다....... 중략..... 어쩌면 그에게 마지막에는 꼭 이겨내야만 하는 인생의 경쟁자였던 걸까. 

 

이에 가장 대조되는 음악관을 꼽으라면 나는 모차르트를 말하겠다. 나태해 보일 정도로 슬픔에 관조적인 그는 이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또한 있는 그대로 풀어놓는다. 독주 피아노를 위해 쓰인 A단조의 <론도 K.511> 이 좋은 예다. 그의 슬픔에는 특별한 근원도 변명도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더욱 없으며 이것이 딱히 물리치고 싶은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만큼 슬퍼, 이만큼 아파, 이만큼 힘들어."하고 너무도 쉽게 인정해 버린다. 사뭇 초인간적으로까지 보이는 태도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中

 

연주자에게 있어서 '슬픔'이라는 재료는 어떤 재료일까. 가장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재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는 것이 웃는 것보다 쉬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손열음이 소개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7번 D장조 Op. 10-3> 중 2악장을 들으며 몹시 힘이 든다. 듣는 것도 이리 힘든데 곡을 쓰고 연주했던 베토벤은 어땠을까. 

 

손열음은 베토벤이 타고난 낙천주의자라고 했지만 베토벤은 슬픔에 매우 인색한 사람이라고 했고 모차르트는 슬픔에 관조적이며 초인간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하나는 슬픔에 대적하고 다른 하나는 슬픔에 항복하는데 둘 중 누가 더 슬픔에 초연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더 낙천적인 것일까. 

 

오늘의 책수다는 여기까지. 위대한 음악가의 일생을 들여다보고 흔적들을 모아 그들의 음악을 이해해 악보 위에 또 건반 위에 그려내고자 하는 연주자의 노력을, 그들은 알까? 그나마 다행인 건. 연주자도 작곡가도 아닌 나는 그냥 내 식대로 음악을 들으면 되는 것으로.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음악을 위한 음악가 슈베르트 

"왕년의 최고 스타. 리스트.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못 칠 줄 알았던 초절기교의 곡들을 200년 후 대한민국의 입시생들이 눈 감고도 칠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너무 쓸데없이 어렵다'며 연주를 거절당했던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1번>. 연주하는 것이 석탄 1000톤을 삽으로 푸는 스태미나와 맞먹는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도 이제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의 십팔번이 된 지 오래다. 

 

프로그램에만 넣으면 테크니션이라는 수식어를 자동으로 안겨주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나 그보다 더 어려운 곡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라벨이 칼을 갈고 쓴 <스카르보> 역시, 이제는 완벽하게 연주하지 못하느니 안 하는 게 나은 곡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기술적으로 정복당하지 않은 최후의 난곡을 우리 음악가들은 안다. '음악가들은 안다' 고 한 건 정말이지 음악가들 말곤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그 곡이 뭔지 정답부터 말하겠다. 답은 슈베르트의 기악곡들이다....... 중략...... 아직까지는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손이 꼬이지 않는다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은 불규칙해서 도저히 손에 익지 않고 화성 전개마저 엉뚱하기 그지없어 머리로도 익혀지지 않는 이 곡들의 문제는 전혀 다른 듣는 이의 사정.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긴 뿐인 그의 음악이 어렵게 들릴 리 만무하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에서

 

 

아. 이럴 땐 나도 정말 '음악가'가 되고 싶다. 음악가가 되어 그들만이 안다는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다. 어쩌면 더 많은 나와 같은 부류들이 공감하리라. 슬프게도 가사 없는 음악은 제목이 영 떠오르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은 아무리 들어도 음악가와 곡명을 매칭 할 수 없으니 슈베르트 기악곡들이 어떻게 손이 꼬이는지 어찌 알 수가 있으랴. 물론. 나는 더 이상 그런 것 따위에 부끄럽지 않은 불혹의 나이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음악인이 되지 못한 아쉬움은 남으리라. 왜 나는 음악가들이 가장 부러울까.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년 1월 31일~1828년 11월 19일)는 31세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가난했고 병약했으나 순박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그는 친구 부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는 죽는 그날까지 가난에 시달리는 실업자였다는 사실. 다작의 왕이기도 했던 그는 왜 평생 가난해야 했을까. 만약 그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더 오랜 삶을 살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후세에 남기지 않았을까.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베토벤을 존경했던 슈베르트는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사랑에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는 다만 연주를 즐기는 음악을 위한 음악가였던 듯하다. 돈을 위해서도 연인을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음악을 위해서 그 많은 명곡들을 만들어냈으니 그 음악이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정복당할 수 없는 최후의 난곡' 들을, 연주자가 아닌 나는 다만 귀와 마음으로 듣고 감동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양 음악사의 많은 거장들은 공교롭게도 당대에는 그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음악가들뿐인가. 살아 있을 당시에 괄시받던 수많은 선각자, 과학자, 그리고 미술가. 이제 와서야 자신들의 이름이 이토록 칭송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그들은 과연 기뻐할지 슬퍼할지. 물론 정반대로 생전에는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가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잊힌 예술가들도 허다하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예술가의 삶은 어떤 것일까?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두고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어째서 수많은 예술작품은 왕왕 그 주인이 세상에 죽고 없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일까? 그들의 작품이 시대를 앞서 나가서일까 아니면 일종의 희소성의 가치 때문, 그것도 아니면 단지 운에 따른 결과일까. 때때로 나 역시 궁금해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희소성의 가치 때문이라면 손열음이 말 한 '그 정반대의 경우'를 설명할 수가 없으니 그 또한 이상하다. 도대체 예술작품의 가치 기준은 무엇일까?

 

"프란츠 슈베르트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미 44개나 되는 괴테의 시를 가곡으로 옮겨놓은 괴테의 광팬이었다. 그렇다면 괴테는? 음악 역사상 가장 천부적인 재능으로 손꼽히는 슈베르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몇 번에 걸쳐 자신의 시에 붙인 음악을 보내오는 이 청년에게 괴테는 끝끝내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혹 괴테가 음악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냐고? 아쉽게도 전혀 아니었다. 신동 펠릭스 멘델스존을 무릎에 끼고 놀 정도로 누구보다 아낀 사람이 그였으니. 슈베르트는 죽기 몇 해 전 잠시 빈에서 반짝 명성을 얻은 걸 제외하면 일평생 대중의 사랑과도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다. 슈 파운, 포글, 쇼버를 위시한 슈베르티아데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들조차 슈베르트를 '남들에게 인정 못 받는 무능력한 작곡가'로 여겨 지기를 멈추었더라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슈베르트는 없었을지 모른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독일의 작가이자, 연극감독, 철학자, 과학자, 시인이자 한때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냈던 괴테. 서양 철학과 문학뿐만 아니라 사실은 음악에도 꾀나 열정적인 사람으로 기록되어있다. 한때는 베토벤과도 매우 친했으며 -비록 성격이 정반대였던 이유로 나중에는 만나지 않았다지만- 음악가 첼터와 교류하며 오페라 제작에 힘쓰는가 하면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부활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모차르트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며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 인물로 모차르트를 뽑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어째서 슈베르트에게는 그처럼 냉담했을까. 그 유명한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은 그가 괴테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만든 작품이다. 이에 정작 괴테는 '음악은 시와 글보다는 못하다'면서 이를 냉정하게 외면했다고 한다. 왜일까. 슈베르트는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지금으로 치면 '인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교적이고 친구도 많았다는데. 아인슈타인이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 중 한 명이라 칭하던 괴테는 왜 슈베르트의 예술적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예술이란 모름지기 타인에게 그 감동을 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심오한 가치를 담고 있다 한들 아무 소용도 없는 것. 허공으로 날아가 소멸되어 버리는 예술이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없음이 아닌가?....... 중략...... 젊은 날의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관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그들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주목받는 예술만 쫒기보다는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고자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사랑하는 자세일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는 진짜 예술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예술가들이 많이 나와 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가, 예술의 완성이란 무엇이길래. 그처럼 많은 천재적인 예술가의 삶은 그들의 노력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고단한 삶을 지속해야 했을까. 문득 20세기 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라는 곡이 떠오른다. 초연 당시 강열한 음악과 안무 그리고 원시주의적 색채로 인해 관객은 충격을 받고 소동을 일으켰던 사건. 하지만 그로부터 고작 1년이 지난 후 같은 파리에서 다시 열린 음악회에서의 관객 반응은-물론 충격적인 안무를 동반한 발레가 빠졌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상이하게 달랐다는 사실 말이다. 이 경우 문제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것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운이 좋아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단순하게 발레가 빠졌다는 이유 때문?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예술의 완성이란 무엇일까? 관객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예술일까? 그렇다면 그 감동은 오로지 예술작품으로부터 전해오는 것일까? 관객 없는 무대의 예술가는 어떨까? 1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바흐의 악보를 멘델스존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째서 바흐의 악보는 푸줏간에서 고작 고깃덩어리를 포장하는 폐지로 쓰였을까?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나는 결국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 어쩌면 예술의 완성이란 관객과는 관계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마땅히 돈도 관객도 아닌 순수하게 예술가의 혼이 깃든 노력과 시간만이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그리 믿고 싶어졌다. 생전 혹은 사후라는 시간의 딜레마는 여전히 유일한 변수로 남아있지만 이 역시 인간의 삶을 닮은 예술의 속성이 아닐까?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조금 더 나누고 싶지만, 블로그 책수다에서는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콩쿠르'라는 양날의 검

"스포츠는 최소한 누가 이기는지 누가 먼저 결승 지점에 도착하는지 그도 아니면 어떤 경우에 가산점과 어떤 감정을 받는지 모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세계는 당연히 그 기준조차 없다. 너무 모호하다 보니 0점에서 가산점을 하나씩 붙여 점수를 완성시키기보다는 100점에서 하나씩 감점을 해서 마지막 남은 점수를 세는 편이 더욱 쉽다. 그래서 종종 그 누구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연주를 한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콩쿠르 우승자와 예술성은 거리가 멀다는 통설이 여기서 나온다. 말 그대로 서바이버, 모든 관문을 무탈하게 통과한 사람이 승리하게 되니까."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나 역시 딸아이의 손을 잡고 매년 콩쿠르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으니 음악 전공자 치고는 조금 늦게 시작한 것일까. 사실 처음에 취미로 다루던 악기가 드럼이었고 4학년이 되면서 비로소 타악기 전공을 하기로 결정한 아이는 스네어 드럼, 마림바, 중국 오음북 등의 각종 타악기 콩쿠르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의 악기의 경우 하나의 악기면 되는데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집도 넓은 집으로 이사해 아이에게 연습실까지 꾸며주게 되었다. 게다가 무슨 놈의 콩쿠르는 그리도 많은지. 

 

초반에 참가한 콩쿠르는 정말이지 우리 가족 모두의 정신을 홀딱 빼앗아갔다. 경험도 없었을뿐더러.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섞여있던 콩쿠르의 규모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무슨 스포츠 경기처럼 넓은 공연장 현장에서 점수를 공개하는데 그야말로 웬만한 담력으로는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백여 명이 참가한 스네어 드럼 콩쿠르에서 초반에 높은 점수를 받아 1등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 백여 명의 모든 연주가 끝날 때까지 전광판의 순위가 아래로 떨어질까 걱정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런 현장 분위기는 예중에 입학하면서 바뀌게 되었는데 이유는 전공자만이 참여하는 콩쿠르에 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대략 콩쿠르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기도 하고 전공자로서는 아직 어린 나이기에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 후부터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손열음이 말하는 피아노 국제 콩쿠르는 또 어떤 분위기일까. 그 긴장감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테다. 그런 콩쿠르를 수없이 참가하며 우승을 꿈꾸는 아이들과 부모들 역시 사실은 콩쿠르의 성적이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다. 현실의 콩쿠르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드라마틱한 반전은 기대할 수 없다. 손열음이 말했듯 대부분 콩쿠르에서는 '가장 안전한 연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쉽게 말하면 '실수'를 최소화하고 '이벤트'는 삼가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런 자유롭지 못 한 연주에서 관객은 어떻게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놀라움이라면 아마도 실수 하나 없는 연주의 테크닉에 관한 경이로움 경험이 아닐까. 설령 연주자가 연주에 몰입한 나머지 뻔한 실수를 하더라도, 나는 어쩌면 감정이 풍부한 연주에 더 매력을 느낄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쿠르는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과 동시에 전공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양날의 검이라고 함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다. 콩쿠르는 과하지도 덜 하지도 않게 주기적으로 참가해주고 결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하되 결코 그것이 가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멘털 싸움이다. 이 멘털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만이 진정한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꿈은 결코 콩쿠르 우승만을 가리키는 것을 아님을.

밥보다 음악회

"러시아에서는 클래식 음악회의 포스터가 마치 대기업의 광고물이나 팝스타의 콘서트만큼이나 크게 길목마다 걸려있었다. 그걸 보고 음악회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서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해 사뭇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음악회가 격식과 예우를 갖추는 문화생활이라면 이곳에선 그저 생활이다. 변변한 수트 한 벌 없는 노신사도 헤비메탈이나 들을 법한 과격한 옷차림의 젊은이도 아무 거리낌 없이 음악회장을 찾는다.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지 않을까 여겨지는 빈민층도 러시아 음악계에서는 VIP 고객이다. 실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필하모니홀 근처에는 갈 만한 식당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밥을 먹을 돈으로 음악회 표를 사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쌈짓돈을 모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러 온 그들은 감동을 받으면 악장 중간이든 언제든 박수를 아끼지 않고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 연주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꽃 한 송이를 건넨다. 이곳의 관객들은 '진짜'다...... 중략...... 그런데 이런 압도적인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외국으로 유학 나온 러시아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은 고국으로의 귀환을 꺼린다. 현실의 벽 때문이다....... 중략...... 사교육비가 말도 안 되게 싸서 재능만 있으면 아무리 돈이 없더라도 쉽게 영재로 길러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은 불과 몇십 년만 지나면 그 수혜자였던 이들을 좌절케 한다.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밥을 먹을 돈이면 아끼고 모아서 음악회를 간다는 러시아인들. 문득 나는 한국 90년대 중반의 신조어 '된장녀'가 떠올랐다. 허영심(虛榮心) 때문에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명품 등 사치(奢侈)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서 한 때 '밥 대신 스타벅스'에 가는 여성들을 두고 사용했던 단어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포인트는 결코 명품 또는 스타벅스가 아닌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일 것이다. 그렇다면 밥보다 음악회인 러시아인들은 어떠한가. 먼저, 명품과 음악회는 같은 선상의 가치 기준에서 평가될 수 있을까. 이어 음악회를 명품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했을 때 우리는 과연 음악회가 밥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21세기에 사는 나는 더 이상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손열음이 말 한 '사교육비가 싸서 좋지만 사교육비가 싸서 음악가들이 좌절하는 러시아'는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겠지만, 사교육비가 저렴하면서도 음악가들이 좌절하지 않는 방법은 다름 아닌 문화예술인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정부의 지원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사람들은 늘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에 목말라있지만 그것에 얼마만큼의 자본과 노력, 그리고 재능이 따라야 하는지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그래서 21세기의 예술가는 더 이상 돈이 안 되는 예술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한다. 

 

문득, 나는 밥보다 음악회인 러시아 사람들의 실상은 어떠할까 궁금해졌다. 

맺음말

이상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읽으며 제가 메모했던 글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글을 통해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조금은 가까워진 듯하여 왠지 설레었는데요. 글쓰기에도 소질 있는 손열음 양이 앞으로도 음악 관련 좋은 칼럼들을 써주신다면. 아마도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잘 읽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손열음 프로필,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출처: 유튜브 crediatv 오늘은 게시글을 쓰기에 앞서 손열음 씨의 명연주를 먼저 감상했습니다. 리스트 라 캄파넬라를 이렇게 담백하게도 칠 수 있다니. 감히 뭐라고 평가할 수 없고, 감사할 따름

free-morpho.tistory.com

 

반응형
그리드형